"심평원에서 불사른 30년 공직인생
김보연 이사(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내 건강보험 약제관리 체계를 수립한 산증인을 찾는다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김보연(약사, 55) 업무상임이사는 단연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다.

의약품 급여기준에 대한 젊은 시절의 애정어린 관심과 흥미는 30년간 김 이사의 발을 심평원에 묶어뒀다.

"학교다닐 때보다 더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건강보험에서 의약품이 차지하는 위치와 중요성이 높아진 최근의 상황을 볼때마다 새록새록 보람을 느낍니다."

의약품 분야 뿐 아니다. 해외에서도 부러움을 사는 청구와 심사 전산화는 김 이사가 TFT 팀장을 맡아 이뤄낸 성과였다각종 명세서 코드를 표준화하고 심사기준을 전산화하는 것은 당시에는 획기적인 일이었다하지만 요양기관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는 적지 않은 땀도 필요했다

"2년반 동안 12시 이전에 거의 집에 들어 간 적이 없었어요. 정부가 용단을 내렸고, 의료계도 협조해준 덕에 지금의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죠."

전산화 작업의 성과는 남달랐다. 우선 진료비 지급기일이 30일에서 14일로 대폭 단축됐다. 국가적으로는 질병통계자료를 생성하는 중요한 데이터의 보고를 갖게 됐다. 심사직 직원들의 과부하를 조금이나마 덜어준 것은 부대효과다.지금은 심평원의 양대 축 중 하나가 된 평가체계의 기틀을 마련한 것도 김 이사가 심평원 설립지원반에서 근무하면서 이뤄낸 성과였다또 약국 처방전 전산화를 위해 그가 주축이 돼 개발했던 DUR시스템은 금기약물 처방조제를 걸러내고 의약품 중복사용을 이중점검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김 이사의 최대 수훈이자 '전공'(전공)은 단연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마련하면서 의약품 급여체계를 포지티브시스템으로 전환하고 각종 관리장치를 마련한 데 있다.

"당시 외국 사례를 분석했는데, 한 가지 제도에 집중하기보다는 다각적인 방법을 다 쓰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보완해야 할 점은 많지만 제도를 운영하면서 슬기롭게 의견을 조율해 나가면 해법을 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풍파가 없지는 않았다. 의료보험연합회 시절 입사초기만 해도 심평원의 위상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동창 모임에 나가서 연합회에 다닌다고 하면 다들 보험회사에 다니는 것으로 이해했어요. 왜 그런 데서 일하냐는 반문만 돌아왔던 시절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이사의 30년 세월 동안 심평원은 직장과 지역 의료보험 심사업무을 맡아하던 조합에서 건강보험 심사.평가, 정부 정책지원 등 중책을 담당하는 공기업으로 명실상부 자리 잡았다. 200명 남짓하던 직원들도 1600여명 규모로 8배 이상 늘었다. 2007년 보건산업진흥원에 9개월간 파견 나갔던 시절은 김 이사에게는 또다른 전기가 됐다.

"스스로 성적표를 작성하다보니 감회가 새로웠어요. 약제비 적정화 방안, 한미 FTA를 겪으면서 지치기도 했던 시절이었는데, 그동안 전력 질주만 해왔구나, 직원들에게도 일이 최우선이라고 강요만 하지 않았나 온갖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라구요. 한번쯤은 다른 위치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구나, 진흥원 파견이 준 선물이었죠."

선물의 힘이었을까. 공직약사 외길, 후회없이 보람만 크다는 김 이사의 후배들에 대한 애정어린 충고는 "목표가 변하지 않았다면 크게 보고 계속 가라".

"저도 두번 정도 그만둘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어요. 직능을 불문하고 처음 들어왔을 때 목표가 있었을 거잖아요. 그 목표가 바뀌지 않았다면 힘들어도 계속 가는 게 나쁘지 않습니다. 국민을 위한 일인데 약간 손해보더라도 후회는 없을 겁니다."

과장과 차장급 중간관리자에 대해서 남다른 충고의 말도 전했다

"몇년 있으면 선배들이 대거 빠져 나갈 겁니다. 과장과 차창급 직원들이 심평원의 중추이자 앞으로 이끌어가 기둥이에요. 빨리 선배들로부터 업무를 배워 스스로를 무장하기 바랍니다."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에 대한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는 소신도 밝혔다.

"보건의료에 몸 담은 모든 분들이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2002년 때처럼 다시 한번 슬기를 모을 때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대화가 필요합니다."